서울~해남 자전거 여행 후기
지난 4월 강릉 여행은 이번 해남행을 위해 엔진 점검과 준비를 위한 여행이었습니다. 겨울 내내 몸무게는 늘고 근육량은 줄어들어 장거리 여행이 부담스러워 사전에 몸 상태를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원래 계획은 5월 초 징검다리 연휴기간을 이용해 가려고 했지만 심한 감기몸살로 이번 6월 연휴로 미루게 되었습니다. 이번 여행도 미리 다녀오신 선배 라이더 분들의 귀한 자료가 많은 도움이 되었고, 생소한 길이지만 시행착오를 많이 줄일 수 있었습니다. 귀한 자료 남겨주신 선배님들께 다시 한번 감사 드립니다. 이후 글은 제 자신에게 하는 독백이며, 경어체가 아님을 양해해 주시길 부탁 드립니다. 금요일 새벽 5시 집을 나섰습니다. 어제 저녁에 사다 놓은 샌드위치 2개를 먹고 안양천으로 향했습니다. 이번 여행 역시 긴장되었습니다. 이제는 장거리 자전거 타기가 어떤 것인지 조금을 알기 때문에 뭣 모르고 다녔던 작년보다 더 긴장되는 것 같았습니다. 아주 조금 자전거를 알아가는 것 같습니다. 이른 새벽 조깅하는 몇 분과 아마 출근하는 듯한 라이더 몇 분이 눈에 띄였습니다.
안양천 끝단
먼저 의왕을 지나 안양천 끝단까지 왔습니다. 이제 거의 시냇물 수준의 가늘어진 개천입니다. 징검다리로 자전거를 어깨에 메고 건너서 고합삼거리로 올라왔습니다. 1번 국도로 들어서기 직전입니다. 출근 차량과 대형 화물차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평범한 국도로 계속 천안까지 달렸습니다. 천안 시내로 들어가기 전에 1번 국도(대전방향)으로 좌회전하여 계속 진행해야 하는데, 천안 시내로 진입해서 거의 40분 가량을 이리저리 헤맸습니다. 겨우 길을 찾아 다시 진행 이후 23번 국도로 들어서서 공주, 논산, 강경에 다다랐습니다. 중앙분리대가 있는 왕복 4차선 국도는 거의 고속도로 수준의 도로로 이런 길을 몇 시간 달리다 보면 커다란 콘크리트 박스에 갇힌 느낌이 들었습니다. 삭막하고 정이 없는 길이었습니다. 강경에서 익산으로 갈라지는 삼거리에서 잠시 앉아 쉬어습니다. 야간 라이딩에 대비해서 전조등, 경광봉 준비하고 초코바, 양갱, 에너지바, 육포 이것 저것 배를 채웠습니다. 맞바람이 조금 거세진 듯하였습니다. 작년 홍천에서 인제로 넘어가는 44번 국도에서 야간 라이딩의 어두움과 쓰치는 차량들의 굉음이 주는 부담감이 어떤 것인지 알기에 (터널을 만난 것이 반가웠던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터널의 불빛으로 밝아진 주위가 너무 고마웠던 기억이 난다) 단단히 채비를 하고 익산으로 향했습니다. 해가 길어진 탓에 하루 라이딩 거리를 늘릴 수 있는 건 장거리 여행에서 좋은 요소로 작용하는 것 같았습니다. 드디어 원광대 앞 도착.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 자전거를 배우고 하루에 달린 거리로는 최고의 기록을 세웠습니다. 220km. 너무 뜨거운 갈비탕을 허겁지겁 먹느라고 입 천장까지 데이고 하루를 마감하였습니다.
힘들었던 자전거 코스
김제, 부안으로 이어지는 길은 자전거가 휘청거릴 정도의 엄청난 맞바람으로 무척 힘든 코스였습니다. 원래 바람이 심한 곳 인지, 아니면 마침 그때 남풍이 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조금 무리한 어제의 거리와 한겨울 한강에서도 좀처럼 보기 힘든 맞바람 탓에 어려운 구간이었습니다. 중간에 잠시 쉬어간 국도변 휴게소, 거미줄이 쳐진 투박한 솥 모양의 재털이에 재를 털면서 크린트이스트우드가 나오는 서부영화의 황량한 선술집이 생각났습니다. 흙먼지가 일면서 엔니오 모리코네의 단골 선율이 깔리면서 등장하는 총잡이. 웬지 칙칙하고 건조한 그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 여기서 과연 뭣 때문에 이러고 있지? 웬지 처량하고 온 몸의 기운이 빠져나가는 허탈함이 엄습해 오기도 했습니다. 점심식사, 줄포 진입 직전의 자그마한 식당, 주차장에 차가 가득했습니다. 괜찮은 식당이라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이곳에서의 점심은 그야말로 대박이었습니다. 자장면 한그릇도 5000원 하는 시대에 6000원짜리 백반이 싱싱한 생선매운탕에 회까지 한 그릇 하니 만족한 점심식사로 다시 기운을 차렸습니다. 이후 영광, 함평을 거쳐 학교사거리에서 1번국도로 목포까지 달혔습니다. 학교이후 목포까지의 1번국도는 대부분 직선구간으로 시원하게 남으로 이어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완만한 내리막길. 목포 전방 15km부터 오르막과 내리막이 연속해서 3개, 야간이라 정확히는 느끼지 못했지만 주간이었다면 신나는 다운힐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함평 직전에서 만난 천안에서 출발한 철인3경기를 한다는 분과 잠깐 노견에서 생수와 콜라를 나누어 마시며, 전 여행 구간 중 유일한 대화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무박 이일로 땅끝까지 도전하는 몸도 마음도 매우 건강한 분이었습니다. 부디 무사히 여행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가셨기를 바래봅니다. 9시가 넘어서야 목포에 도착한 후 잠들었습니다.
마지막 자전거 완주
아침에 일어나니 몸 여기 저기가 가볍게 뻐끈했습니다. 이제 남은 거리는 90km. 이후 2번국도, 13번국도, 그리고 마지막으로 77번 국도, 그렇게 땅끝마을이라 불리는 그곳에 도착했습니다. 커다란 바위로 이곳에 ‘한반도의 가장 남쪽’이라고 씌여져 있었습니다. 다른 분들이 여행후기에 쓰셨던 도착했다는 감격, 성취감은 그다지 크지 않았습니다. 다만 목적지에 무사히 다달았다는 안도감과 여유로움에 긴장이 풀리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남쪽바다는 회색쪽빛이라고 해야 할까. 동쪽바다의 짙은쪽빛과는 차이가 있는 바다색이었습니다. 땅끝. 모든 해안선은 땅끝이리라. 다만 사람들이 이곳을 땅끝이라 부르고 나처럼 이곳을 향하는 이유는 새로운 무언가의 시작인 이곳에서 땅에서 얻지 못한 바로 그것을 얻고 싶기 때문은 아닐까? 약 1200리의 거리를 달린 후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오른쪽 엉덩이 밑에 자그마한 뽀루지와 왼쪽 어깨의 가벼운 통증을 제외하면 다친 곳 없이 무사히 여행(?)을 마쳤습니다. 또 하나의 숙제를 끝내고, 다음의 숙제를 준비합니다. 누가 내 주었는지, 왜 이 숙제를 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자전거와 달리는 길과 빰을 스치는 바람과, 주위의 모든 사물과 하나되는 그런 여행을 하기 위한 내공을 쌓기 위해서 일지도 모르고, 아직은 거리와 속도에 매여 맹목적으로 달리는 하수임을 부끄럽지만 고백합니다. 몸 속의 지방 덩어리, 나쁜 콜레스테롤, 그리고 마음 속의 미움, 분노를 조금은 태우고 온 시간이었습니다. 아주 약간 가벼운 상태로 다시 원래의 그곳으로 돌아와 이 글을 씁니다. 이 작은 글이 앞으로 해남으로 자전거와 함께 가실 계획이 있으신 어느 분께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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